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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군 스탈? 밭문화 중심의 제주도

사베짱이 이야기

by youngmanee 2011. 2. 1.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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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토양은 대부분 화산토이다. 제주도의 땅은 화산암으로 제주도 사람들은 이 땅을 "뜬땅"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척박하여 논농사를 지을 수 없고 생산력이 낮은 밭농사를 지을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밭농사도, 다량의 거름을 필요로 했다고 한다. 게다가, 고온다습한 제주도의 날씨는 열매를 맺는 작물보다 더욱 빨리 성장하는 잡초와 싸우게 했고, 섬이라는 주변 환경은 다양한 자연재해를 불러와 곡식의 수확에 지장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농작물에 대한 어려움은 제주 사람들을 해삼물 채취에 대한 의존율을 높이게 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만들었다고 한다.

화산섬이라는 자연환경, 생산형태를 따라가는 문화


제주는 화산섬으로 한라섬은 바다에서 부터 오나만한 평원을 만들어 내면서 솟아나 있다. 이러한 환경은 농경문화, 수렵문화, 해양문화 등 세가지 문화가 공존하게 만들고, 이러한 다양한 문화가 생산형태와 자연환경을 반영한 채 나타나 이루어져 나타난다. 제주도의 산간, 중간산 마을은 반농반수렵, 반농반목축의 생산형태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곳에는 산신과 농경신의 직능을 사진 신들의 분포하고 있다. 반면 제주도의 해안마을은 반농반어업의 생산형태로써 해신과 농경신이 분초한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농경신의 분포가 가장 많이 나타나는 것은 물론이다.


주로 제주도의 산신은 수렵민적 산신에서 농경민의 산신으로 겸업 혹식 마을신의 수호신인 본향당신이 된다. 외지에서 입도한 농경신은 여신과 부부가 되고 생산과 관련된 갈등을 겪으면서 별거를 하게 되고, 이런 결혼과 별거는 수렵 목축사회에서 농경사회로의 전환과 마을의 형성과 분리 확산을 나타내는 것이다.

해신신앙은 바당밭에서 경작지와 어장을 사진 해촌사회의 신앙으로 제주도 당신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한라산의 산신들이 사냥을 하며 산을 내려와 마을의 당신이 되듯이 해신들은 보통 한라산신과 혼인하고 심해의 용궁으로 부터 뭍에 올라와 좌정하며 당은 자연마을 단위 1개씩 있으며 바다로 통하는 길목이나 바닷가에 하나씩 만들어 진다.


바당밭의 풍요를 기원하는 잠수굿을 요왕굿이나 영등굿이라 한다. 이 굿의 제차 중에 <요왕세경본풍이>가 있는데 여기에서 세경은 농신을 말한다. 땅이 척박한 제주에서 바다는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냥 바다가 나닌 '바다농사', '바당밭‘이라는 말이 일반화 되어 있다. 바다농사가 그만큼 중요했던 것이다.


제주에는 마을 마다 당이 있다. 마을의 시작은 당을 세우고 마을 사람들이 각각 또는 같이 당신에게 여러가지를 기원하면서 개체적으로 공동체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중심점이 된다 도든 여러가지를 기우너하면서 개체적으로 공동체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중심점이 된다. 모든 본향장신은 공동체의 생활과 관련하여 수렵, 목축과 같은 남성적 형태는 남신으로 출생 및 산육과 치병 그리고 풍농과 같은 경우는 여신으로 그 직능이 분리되어 있다.


소규모 밭농사지역- 마을 공동체가 중심인 당


제주도 신앙은 마을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하는 마을당 (본향당)신앙이 중심을 이루어 육지(한반도)지역과는 다른 특징은 지니고 있다. 육지지역은 논농사 중심의지역이다. 토지 중심으로 대규모의 노동력을 필요로 했다. 따라서 혈족 중심으로 대규모의 노동력을 필요로 했고, 다른 혈족과의 싸움에서도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공동체 내에서도 엄격한 규율과 공동체로서의 규칙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강력한 족장을 중심으로 한 가족심심사회가 중심을 이루어야 하는 사회구조가 될 수 밖에 없고, 이러한 체계가 신앙에도 구체화 되었다.


하지만, 제주의 밭농사는 논농사 지역과는 달리 경작지가 한 마을 안에서도 땅의 상태, 용암반의 분포 및 고도 등에 따라 진압, 제초, 파종 등의 하는 시기가 달라짐으로 각각의 조건에 딷 맞는 떄의 노동력을 서로 수눌어가며 처리해야 했다. 척박한 조건에서 자립은 필수 적이었고, 이 자립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수눌음과 같은 강한 공동체 의식은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제주도 여성에 대한 대우의 면에서도 그렇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경제적으로 가장 빈부의 차도 적고 사회적인 위계도 비교적 심하지 않은 평등한 지역이다. 척박한 토양은 여성들 역시 생산에 부지런히 참여하게 했고, 경제적인 능력이 확보될 수 있었다. 관직에는 극소수였지만, 농사나 사냥, 물질의 생활이 대부분이었다. 사람들은 ‘돌랭이’라는 소규모의 척박한 밭을 소유하여, 열심히 갈아먹어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반과 상민, 적자와 서자, 부자와 가난한자,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란 것은 사실상 중요한 의미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평등과 공정의 분위기는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되었던 것이다.

<자료 출처:제주여성문화  김정숙(2002),『자청비'가믄장아기'백주또-제주섬, 신화 그리고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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