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다시태어난다면.

youngmanee 2011. 3. 9. 12:11


내가 태어날 때 나를 받은 것은 큰엄마였다. 엄마가 느를 예정일 보다 빨리 낳는 바람에 가족들은 모두 외출 중이었고, 옆집에 살고 있던 큰엄가가 달려와서 나를 받았다. 그래서 나는 큰엄마에게 묘한 친근감이 있다. 태어나서 내가 제일 처음 만난사람. 처음접촉한 사람.
다 자라서 큰엄마와 여행을 한적이 있다. 여행을 다니면서 우리는 온갖 이야기를 했다. 여행 중 어디에선가 내가 말했다.

"큰엄마는 죽어서 뭐가 되고 싶어?"
그러면 큰엄마는 아무런 주저도 없이,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되어 있었다는 듯 말했다.
"학"
내가 물었다.
"학? 왜?"
"너희 큰아버지가 학이 돼서 날 기다리고 있어"
평소에 얼마나 생각을 했으면 큰엄마는 능청스러울 정도로 사실적으로 대답했다.
"어디서?"
"으응, 저 남쪽 바닷가 소낭구 위에서"
"그럼 그 나무가 어디 있는 줄 알어?"
"나 죽으면 금방 데릴러 와"
"큰아버지는 아주 오래전에 죽었는데, 큰엄마가 빨리 안죽으면 어떻게 해?"

"으응. 괜찮아. 학은 천년을 살잖어, 몇십 년쯤은 문제도 안돼'

김점선, 10cm 예술, 학, p122-p124

나는 내 남편이 내가 빨리 안죽어서 잠깐 개로 태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겐 생을 정리할 삼십년이 필요하다. 나는 남편보다 삼십년 늦게 죽을 것이다 그 개는 삼십년 쯤 살게 될 것이다.
남편은 아천리 어떤 집, 내가 가끔 놀러가는 집에 개로 태어나 있다가 가끔 내가 가면 우리는 초감성으로 만난다. 내가 죽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개도 굶어 숨을 거둔다. 우리는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다. 같은 해 같은 동네에서, 우리는 세살 때부터 손잡고 프리스쿨에 다닌다. 우리는 백 년 동안 싸우지 않고 무지무지 좋아하면서 산다. 사랑은 당대에 완성되지 않는다.

김점선, 10cm 예술, 게사니, p 140



가슴이 철렁. 책을 읽어내려가던 중 나도 모르게 가슴이 떨렸다.